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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구호성금현황
필리핀 태풍 재해 구호 성금 현황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2-19 (수) 08:04
홈페이지 http://www.ckcgw.org
ㆍ조회: 1968      
필리핀 하이옌 태풍 피해 이재민 구호 선교 보고
일시: 2014.1월 22일(목)~1월 29일(금)
장소: 필리핀 비사야제도(타클로반, 세부) 민다나오(다바오), 민도르 섬
 
(시편 112: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 필리핀
  필리핀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필리핀은 지진과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인구는 대략 9,4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필리핀에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스페인은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괌 등 지배권을 미국에 양도했다), 필리핀-미국 전쟁(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따갈로)와 영어이다.
 
  필리핀의 민족 구성은 대체로 네그리토족•인도네시아인•말레이인이 중심이었으나 현재의 필리핀인은 90% 이상이 말레이인에 속한다. 이들 민족 외에 10%는 화교와 메스티소라고 불리는 혼혈족이 차지한다. 화교가 경제생활에 공헌하고 있다면 메스티소는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고등 교육을 받아 사회적으로도 상류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한다. 이 밖에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의 민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언어 또한 많아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타클로반이 위치한 레이테 섬은 세부아노 라는 방언을 사용한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및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 모두에서 동양과 서양이 독특하게 혼합된 국민이 나타났다.
 
  필리핀의 치안은 불안 요소가 존재 한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반면에 경찰력은 상당히 약하다. 경찰은 마을의 게이트를 지키거나 경찰서와 순찰자를 이용하여 거리 치안과 범죄를 예방하나, 작은 범죄(소매치기, 사소한 다툼) 등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돼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키는 도시에도 관광객이나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꾸준히 발발하는 등 치안상태는 불안하다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은 한국의 6.25 동란에 UN 16개국 참전국으로 7,420명이 참전하여 112명 사망하고 299명 부상을 당했다.
 
2. 경제상황
  한국보다 잘 살던 나라였던 필리핀. 1960년대 필리핀의 GNP $180 (한국 은 $80.-)였다. 장충체육관과 문화관광부 건물은 필리핀 원조와 기술로 지어졌으나, 국력과 경제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현격하게 필리핀을 앞서기 시작했다. 1965년 필리핀 1인당 GNP 270달러일 때 한국은 102달러, CIA팩트 북 자료에 따르면 80년 한국과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 1,674 달러, 필리핀 674 달러까지 벌어진다. 2005년 필리핀 1천30달러였을 때 한국은 1만6천500달러가 됐다. 2007년 $1,100 (한국은 $20,000.-)
  마르코스 정부의 21년간 독재와 부정부패로 국민경제가 도탄에 빠진 것으로 생각된다.
 
3. 태풍 하이옌 스케치
1) 태풍의 시작점 레이테 -  2013년 11월 7일
  필리핀은 1년에 약 23차례의 태풍이 발생 하는데, 대부분은 중부 레이테 섬 동쪽 태평양에서 만들어 진다. 이러하다 보니 태풍에 대해서는 해마다 겪는 행사처럼 여기기도 하고 왠만한 이력이 붙어 나름대로 잘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이번에도 ‘여느 때 처럼 길가에 심어진 코코넛 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넘어지는 정도에서 지나가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레이테 섬의 주도인 타클로반 공항 청사 건물의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철재 서까래가 엿가락처럼 휘어진 모습과 주변의 집과 나무들이 뽑혀 어지러진 잔해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타클로반 시내 풍경은 어느 사막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계절이 없어 일년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산은 폭격을 당한 듯 민둥산으로 변했고, 모든 초목들은 마치 고목이 그 수명을 다해 가지만 앙상하게 허공에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황량하게 변했다. 그렇게 많은 야자수 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던 꼭대기 부분이 다 잘려나가 버렸다. 추수한 벼를 빗처럼 생긴 쇠갈구리에 넣어 볏단을 훑는 것처럼 태풍 다이옌은 모든 푸르름을 그렇게 훑어 버렸다.

시속 378 km 의 가공할 만한 태풍이 4시간 동안 타클로반을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작심이나 한 듯 철저히 망가뜨리고 부스러 뜨렸다. 기본적으로 전기, 수도, 통신, 도로는 가장 먼저 파괴되고 마비된다.
 
2) 계엄령이 떨어진 재난의 현장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휩쓸어 버린 다이옌 에게는 교도소 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교도소 울타리와 지붕이 뜯겨져 나가면서 탈옥수가 생기고 시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떨었다. 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들고 일시에 시내로 몰려 나와 모든 상점들을 약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급기야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인들이 시가지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4. 구호팀 활동보고
1월 22일(수) 오전 10시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출발한 워싱턴지역한인교회협의회 구호팀(회장 최인환 목사, 구호위원장 김영천 집사, 부회장 노규호 목사)은 인천공항을 경유하여 1월 23일(목) 오후 10시 30분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와 세관 검사를 마치고, 밤 12시에 현지 선교사들과 만남을 가진 후 효과적 구호활동을 위하여 구호팀을 2개조로 편성(타클로반 팀- 김영천, 노규호, 이동백) (세부, 다바오 팀- 최인환, 송호일)하여 각각 타클로반과 세부, 다바오 지역을 방문하기로 하였고, 1월 24일(금) 새벽 5시 마닐라 공항으로 가서 각각 오전 7시에 출발하는 타클로반, 세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 타클로반과 사말지역
A. 인원: 구호위원장 김영천 집사, 부회장 노규호 목사, GMS이동백 선교사, 손명식 선교사, 국제기아대책기구 서상록 선교사 동행,
B.  기간: 1월24일(금)~1월 26일(주일)오후
 
  타클로반은 세계 전사에 기록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그 첫 발걸음을 시작한 역사적인 곳이다.
한국의 인천 상륙 작전처럼 맥아더가 이끄는 연합군이 첫 상륙을 시도한 레이테 섬의 주도인 타클로반은
세계의 평화를 향하여 내 디딘 큰 발자국이며 전환점이 된 곳이다. 

  레이테와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로 옆에 ‘사말’ 이라는 섬이 있는데 이곳은 필리핀에서 가장 낙후 되고 가난한 섬이다. 조상대대로 가난에 찌들어 사는 동안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해 싸우기를 좋아한다. 같은 필리핀 사람들 이지만 사말 사람을 보면 무서워 하고 피할 정도이다.

  타클로반에 있는 교도소에서도 레이테 사람들과 사말 사람들을 분리하기 위해 가운데 철조망을 쳐서 관리를 할 정도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워라이 워라이’ 라고 하는데, 이는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이 없다’ 라는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뜻이다.

  오래전부터 이들은 사말 보다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레이테 섬의 타클로반으로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하자 본래 타클로반에 살던 사람은 거칠고 난폭한 사말 사람들을 피해 남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타클로반은 사말 사람들로 채워졌고 언어도 세부아노에서 워라이 워라이로 바뀌었다.

  타클로반에 먼저 온 사람들은 경제적 기반을 잡아 도시 중심지에 살지만 새로 유입되고 있는 사람들은
으례껏 바닷가 무허가 수상 가옥에서 집단적으로 마을을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번 태풍 다이옌은 타클로반을 통과 하면서 특히 이들이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마을 중앙엔 바다에 떠 있어야 할 5백 톤에서 1천 톤급의 화물선들이 노아의 방주 처럼 육지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고 부숴진 건물들의 잔해들은 마을 진입로를 막아 일행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레이테 북쪽인 타클로반에서 발생한 태풍의 재난은 카테고리 3에 해당하는 대형급 재난이다.
 
공항을 빠져 나오자 마자 코를 찌르는 듯한 역한 냄새가 난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약 2km의 도로엔 부숴진 주택들의 잔해들이 쓰레기 하치장처럼 널려져 겹겹이 쌓여 있다. 어느 한 집도 무사한 곳이 없다. 마치 폐목 야적장같이 변해 버린 삶의 터전에서 나무를 하나 둘씩 들어내며 가재 도구와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 여름 바닷가 햇볕은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재앙!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었고, 이런 참혹한 상황은 처음 목격하는 것이었다.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하여 약 1시간을 기다리니 현지 손명식 선교사와 원주민 목사가 운전하는 미니 밴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그 도움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군 복구지원단(단장 이철원 대령)이 있는 비로봉함정으로 가서 이승준 군목의 영접을 받았다.

  한국군 복구지원단 아라우 부대의 협조로 질서 정연하게 톨로사에 있는 텔레그라포 초등학교에서 구호식량(쌀) 10KG, 500포대를 초등학교 500여명의 어린이들과 교사들에게 골고루 전달할 수 있었다.

  톨로사 텔레그라포 초등학교를 찾아 한국군 아라우 부대의 보호를 받아가며 식량을 나누어 주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겐 누군가가 곁에서 그들의 아픔을 알고 함께 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주는 것이 구호품 이상으로 클 것이다.

구호식량(쌀)을 전달한 후에, 한국군의 지원으로 건물이 복구된 초등학교 건물을 둘러보았으며, 원주민 교회와 목회자 모임을 위해 교단대표 목사를 만나 구호물품(라면)과 복구지원비의 효과적 지원을 위한 협의를 한 후, 태풍피해로 전파된 원주민교회 현장을 둘러보았다.

1월 25일(토) 타클로반 Harvest Church에서 원주민 목회자 60여명과 구호물품 전달과 위로예배를 드리며 구호물품(라면)과 특별히 구호위원장 김영천 집사가 현지에서 지원한 헌금을 일일히 전달하였다.

오후에는 레이테 섬에서 약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Eastern Samar지역의 피해지구를 둘러보고, 복구지원이 필요한 사말영광교회외 2곳 교회의 사정을 청취하였다.

1월 26일(주일)은 아라부부대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한국군 장병들에게 김영천 집사는 간증을, 노규호 목사는 말씀을 선포하였고, 필리핀군 공병대에 구호물품(라면) 20 Box를 전달하였다.

국제기아대책기구 필리핀 담당 서상록 선교사와 만나 원주민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재건을 위해 지원방향을 협의한 후, 피해지구를 돌아보고 오후5시 비행기로 마닐라로 돌아와 다음날 민도르 섬 구호를 위해 세부 구호팀과 합류하였다.
 
2) 세부 지역
A. 인원: 회장 최인환 목사, 송호일 선교사, 다바오 신학교 학장 동행
B. 기간: 1월24일(금) ~1월 26일(주일) 오후

세부의 다앙 반타안 지역의 타피론 바랑가이(한국의 동단위)는 1926가구로 형성되어 있고 각 가구마다 2~3 가족이 모여 살고 있으며 16개의 sitio(한국의 통 반 단위)로 나누어져 있다.
인구는 25,000 정도이며 지난 11월 태풍에 집들이 98%가 피해를 입었으며 바다에 근접한 어촌으로 인명피해 또한 적지 않았으며, 워싱턴 구호팀이 방문했을 당시에도 바랑가이 사무실은 지붕은 날아가 버린 상황으로 천장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사무실 안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설복구와 수리에 여념들이 없었고, 워싱턴 구호팀이 방문하자 Municipality(구청 단위)에서 영접하며 감사를 표했다.

도착한 구호식량(라면)은 326상자로 주민의 가구수에 비해 절대량이 부족하여 적정선에서 현지에서 라면(10개들이 팩)을 긴급히 더 구입하여 800가구에 전달하였다.
고등학교 한 곳과 초등학교 2곳이 있는데 교실과 지붕이 파손되고 무너진 곳이 많았고, 주택들과 현지 원주민 교회들이 심히 파손되었기에 복구를 지원하기 위하여 $3,000을 전달하였다.
어린이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워싱턴에서 준비하여 간 어린이용 신변잡화를 나누어주었으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다음 날 민다나오의 다바오에 있는 대학교를 방문하여 20여명의 신학생 한달 생활비 $3,000을 구호하였고, 파괴된 현지 교회(침례교회, 하나님의 성회, 현지교단교회) 3곳을 방문하고, 교회 수리에 여념이 없는 3개 교회에 특별 복구지원헌금을 전달하고 임산부 사모님을 격려하였다.
 
3) 민도르 섬
합류한 구호팀(회장 최인환 목사, 구호위원장 김영천 집사, 부회장 노규호 목사)은 1월 27일(월) 오전 10시 열방선교회 최용길 선교사(민도르 선교사)와 동행하여 마닐라를 떠나 차량으로 이동, 민도르로 가기 위해 배를 타려고 선착장에 갔다. 오후 2시에 출발예정인 배가 고장수리중이라서 출항을 하지 못하고 선착장에서 기다리다가 저녁 6시 배를 타고 민도르 섬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까지 원주민 목회자 수십여명이 모여 구호팀을 기다리며 비상기도회를 갖고 있었다. 구호성금과 물품 전달을 위해 예배를 함께 드린 시간이 밤 10시 30분이었다.

  민도르 섬에서는 구호팀이 전달하려는 농심라면은 현지라면보다 가격이 5배가 비싼 상품이기에 현지 최용기 선교사의 판단에 따라 현지라면(Ho-Mi)으로 교체 구입하여 최대한 많은 원주민들에게 골고루 전달하도록 조치하였다.
동시에 구호물품(쌀)과 주거지 복구비용은 산지족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가정마다 일일이 현금(페소)으로 나누어 지급하였다.

1월 28일(화)은 최용기 선교사의 안내로 원주민 주거지와 교회를 방문하여 구호물품을 지역별로 전달하고, 태풍피해로 복구가 필요한 가정마다 일일히 복구비와 구호물품(쌀)비를 전달하였다.
특별히 산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은 옷도 없고, 신발도 없이 맨발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잘 씻지도 않은 어린이들이 많아 눈물없이는 볼 수 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절한 환경이었다.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가난구제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생명)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나, 가난을 퇴치해주시지는 아니하시지 않았는가!

1월 29일(수) 마닐라에서 현지 선교사들과 모임을 갖는 등 모든 구호일정을 마치고 밤 11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여 1월 30일(목) 새벽 4시 경 인천공항에 도착, 한국에서의 일정을 보낸 후 2월 7일(금)이후 구호팀 모두 미국으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잠언 21: 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2014.2.18
보고자: 워싱턴지역한인교회협의회 필리핀 태풍피해 이재민 구호 선교팀  부회장 노규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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